알다시피 스님들은 삭발을 한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하여 욕망과 번뇌의 상징으로 여긴다. 곧 스님들이 말끔히 깎는 머리는, 세속적 명리(名利)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수행정진에만 몰입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비니모경>에는 “머리를 깎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다”라고 적혔다.

수행자들의 삭발은 고대 인도 때부터 전해 내려온 풍습이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출가를 하면서 맨 먼저 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랐다. 그런데 자못 이상한 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곱슬머리다.

불상의 ‘나발(螺髮)’은 불상이 처음으로 조성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이 깊다. 부처님이 열반한 직후 예경의 대상은 불상이 아니라 불탑이었다. 부처님의 시신을 다비하자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사리를 땅에 묻고 그 위에 조성한 탑은 부처님의 육신을 대체했다.

불상이 등장한 때는 부처님이 입멸한 후 500여년이 지나서다. 최초의 불상은 인도 서북 간다라지방과 북부 마투라지방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마투라 불상은 전형적인 인도인의 모습을 띠고 있다. 반면 간다라 불상의 외양은 상당히 서구적이다.

아테네 신전 ‘신상’ 본떠 제작

서구적 간다라불상 영향 받아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아테네 신전의 신상을 본떠 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석고상처럼, 부처님도 본의 아니게 ‘파마머리’를 갖게 됐다는 추측이다.

그렇다면 왜 간다라지방에서 서구화된 불상이 나타난 것일까. 이곳이 한때 그리스인들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간다라불상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발생한 일종의 문화융합 현상이다. 기원전 3세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박트리아왕국이 성립됐다. 아시아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이 만든 나라다.

100여 년 뒤 박트리아왕국은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간다라를 침공했다. 이렇게 간다라를 차지한 이가 메난드로스왕(王)인데, 바로 불교경전에도 나오는 ‘밀린다왕’이다. 그는 훗날 중인도의 나가세나스님과 접견하고 불교신자가 되었다. <밀린다왕문경>은 곤란한 질문으로 스님들을 당황케 하던 메난드로스왕이 나가세나스님의 꼼꼼한 반박으로 마침내 설득당하는 내용이다.

메난드로스의 불교 귀의는 사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리스의 임금이 불자가 된 것이다. 더구나 독실했다. 그의 얼굴을 조각한 주화에는 불교의 삼보(三寶)도 함께 새겨졌으며, 죽은 뒤에는 부처님처럼 탑을 건립해 자신의 뼈를 나눠 보관했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소개된 이야기다.

간다라 지역은 오늘날 파키스탄의 라왈핀디와 페샤와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을 포함한 인도의 펀잡 지방일대로 추정된다. 준나르 석굴에는 펀잡에서 온 그리스인 무역상이 부처를 모신 흔적이 있다.

나시크 굴에도 부모를 위해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그리스 식 이름이 보인다는 전언이다. 메난드로스뿐만 아니라 박트리아의 국민들도 불교를 믿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간다라 불상에는 서양인과의 형태적 유사성을 넘어 그리스인들의 신심도 깃들어 있는 셈이다.

간다라불상은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전래되면서 불상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했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은 간다라불상의 한국적 변용으로 익히 알려졌다.

간다라불상이 동아시아에서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뛰어난 조형미가 한몫했다. 인체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현실감을 살려낸 점이 특징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이고,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이 최고의 부처님으로 간택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불교신문3084호/2015년2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