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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24 11:17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김안로(金安老 1481-1537년) [대동야승 13권 1]
 글쓴이 : 조현서
조회 : 0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대동야승 131]

 

김안로(金安老 1481-1537)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자서(自序)

 

내가 귀양살이한 이래로 과거의 잘못을 깊이 생각하여 고치려고 스스로 뉘우치고 많이 조심을 하였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내가 둥근 구멍에 따라서 네모난 장부를 고치거나, 남에게 잘 보이려고 부엌에 제사지낼 수는 없었다. 내 뜻으로는 본질을 지키며 충심을 다하여 험악한 일을 무릅쓰고 한 길로만 달리면서 거의 실낱 같은 충성을 바치려 하였으나 목을 움직여 말만하게 되면 남의 시기를 받게 되고 발을 들어 행동하기만 하면 함정에 빠져 당실(堂室 집안 식구)과 폐부(肺腑 일가 친척)가 모두 구기(?機)나 고가(鼓架)가 되었다. 한 사람이 제창하는 것이 마치 불을 부채질하는 것 같고 거기에 천 사람의 의심이 바람같이 호응하여 칼을 갈고 물을 끓이는 자가 용맹을 떨치며 나를 급히 밀어넣으려 하니, 어찌 나의 미치고 어리석은 성질이 힘을 돌아보고, 자신의 재주를 헤아리지 못하고서 시대에 합당하지 못하였던 것을 요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구구한 내가 나라에 몸을 바친 죄가 만번 죽어도 속죄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임금께서 밝게 살펴주시고 당시의 여론이 특별히 용서하여 요행히 피묻은 이빨에서 벗어나게 되어 형벌 받은 나머지 목숨을 잇게 되었으니 은혜가 지극히 두텁다. 죽을 뻔하다 남은 혼이 아직도 떨려서 진정되지 않는다. 외로운 몸뚱이가 떠돌아다니면서 엎치락뒤치락하여 습지와 더러운 것에서 발생하는 열병 등 백 가지 독을 받아 죽음과 이웃이 되어 있노라. 그러나 몸을 버리기로 결심하여 스스로 화를 밟으려고 결단하였으니, 비록 구렁텅에 빠져 죽더라도 또 후회할 것이 무엇 있겠는가. 천지의 귀신들이 위에 벌려 있고 옆에 나열하여 있으니 나를 죄에 얽어매려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의 마음속으로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횡액(橫厄)으로 당한 환난은 옛날 사람들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조용히 조그마한 방을 쓸고 향을 피워 마음을 고요히 하면 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남은 생명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군자가 병폐로 생각하는 바라, 백번 귀양살이한 사람이 정신이 피로해서 성인의 글을 보아도 두어 줄을 읽지 못하고 마음이 심란하여 푸르고 붉은 색이 다르게 보여 문득 그 장()도 마치지 못하고 걷어 치워버렸다. 긴 밤과 기나긴 낮을 뜻 둘 곳이 없으면 때로 예전에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붓 가는 대로 기록하여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농담하는 것에 대신하였다. 또한 새로 얻는 것이 있으면 그 끝에 보충하여 번민을 덜고 적적함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비록 이런 것으로 마음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낮잠을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패관소설(稗官小說)도 충분히 박식(博識)을 돕고 잃어버리거나 떨어진 것을 주워 모을 수 있어서 역사의 편집을 맡은 사람들이 반드시 참고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어찌 끝끝내 감추어 두어 사유물(私有物)로만 할 수 있겠는가.” 하니,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아직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다만 책상 안에 두어서 나의 자손들로 하여금 오늘날의 나의 불우하고 고생스러운 상황을 알게 하여 자손들이 마땅히 힘쓰도록 할 뿐이다.” 하였다. 가정(嘉靖) 전몽(?蒙) 작악(作?), 즉 을유(乙酉 서기 1525) 12월 상한(上澣)에 인성당(忍性堂)에서 적음.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김안로(金安老) ()

포은(圃隱) 정문충(鄭文忠)의 사당이 옛부터 영천(永川)에 있었다. 손문정(孫文貞) 순효(舜孝) 칠휴공(七休公)이 일찍이 이 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 영천군 경계를 지나다가 말 위에서 술에 취하여 졸면서 몽롱한 가운데 포은 사당이 있는 마을을 지났다. 꿈결에 희미하게 한 늙은 노인을 보았는데 수염과 머리가 희고 의관이 아주 점잖았다. 노인이 말의 머리를 막아 서면서, “내가 포은이라.” 하고, 또 말을 계속하기를, “내가 있는 곳이 너무 퇴락하여 바람과 비를 막을 수가 없다.” 하는데, 마치 그에게 부탁하는 빛이 있어 보였다. 칠휴공이 놀라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고로(故老)에게 물어서 그 옛터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 고을 사람들에게 권하여 사당을 다시 지었다. 집이 이루어지고 물품들이 모두 비치된 뒤 칠휴공은 몸소 잔을 드리고 사당의 낙성식을 올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큰 잔에 술을 가득히 마시고 취하여 마루의 벽에 글을 쓰기를, “문 승상(文丞相 송 나라 문청상)과 충의백(忠義伯) 두 선생의 간담이 서로 비추어 일신을 잊고 사람을 기강을 세우시니 천만 세에 우러러 마지 않는다. 이권(利權)이 있는 곳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분주히 모여드는데, 맑은 서리 흰 눈에 송백만이 창창한데 집 한 간을 지어서 비바람을 막게 하니 공의 신령(神靈)도 편안하고 내 마음도 편하리다.”라 하였다. 나는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충성스러운 혼과 굳센 넋은 천지 사이에 있어서 넓게 조화(造化)의 원기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니, 어찌 구구하게 사당의 성패로써 남에게 힘을 빌리는가. 아마도 이 노인[七休公]의 마음이 넉넉하고 아름다워 평생을 두고 충성과 관용으로써 마음을 삼았으므로 그 정신과 기맥(氣脈)이 혹 황홀한 사이에 감동된 것인가 보다. 내가 동도(東都) 경주의 부윤이 되니 이웃 고을이 곧 영천(永川)이라, 옛일들을 물어서 포은의 사당은 아직 있는 것을 알았으나 칠휴공의 글씨는 이미 다 떨어져 나가 흔적이 없어지고 돌 같은 데 글을 새긴 일은 본래 없었다. , 유유한 백 수십 년 동안에 칠휴공 한 사람을 기다려서 사당을 수리하였는데, 기록을 새긴 이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던가. 개연(慨然)히 그 고을의 군수 장군(張君)과 모의하여 돌을 장만하는 역할은 그 고을에서 부담하고, 거기에 새길 글은 나에게 청하였는데, 내가 상주가 되어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일이 다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한탄스러워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뒤에 오는 군자에게 바랄 뿐이다.

칠휴공(七休公)이 여러 군은 순행할 때, 길을 가다 효자나 열녀의 정문(旌門)을 보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참배를 하고 지나갔다. 금오산(金烏山) 아래 길재(吉再) 선생이 살던 곳에 가서 제문을 지어 잔을 드리고 말하기를, “사당 아래서 절하며 뵈오니 당신 모습을 뵙는 것 같습니다. 금오산과 낙동강 물은 옛날과 같은데 선생은 어디에 계십니까. 초황(蕉黃)과 여단(?丹)을 드리오니 영령(英靈)께서는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이 늙은 내가 문자를 다듬는 데에는 뜻이 없으나 가슴에서 나오는 말이 절로 이러한 정도였으니 가히 그 풍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소릉(昭陵)이 폐해진 지가 정덕(正德) 계유년(서기 1513)까지 58년 동안이었는데, 인심이 원통하게 생각하여 복구되기를 바란 지가 오래되었다. 어느 날 경연 검토관(經筵檢討官) 소세양(蘇世讓) ()이 처음으로 그 주장을 하였다. 그러자 임금께서 슬피 여겨 대신에게 명하여 춘추비기(春秋秘記)에서 그 당시 폐한 이유를 찾아 보도록 하니, 과연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폐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공경(公卿)들을 대대적으로 모아 의논하도록 하였다. 이 명령을 받고 대궐에 들어갈 때에 판상(判相) 장순손(張順孫)이 유영상(柳領相) 집에 들러, “오늘 의논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유영상이 강건히 불가(不可)하다고 말하였다. 대궐 안에 들어가 의논하게 되어서 삼공(三公) 이하는 모두 어렵게 여기고, 오직 신용개(申用漑)강혼(姜渾)장순손(張順孫)과 나의 계부(季父) 충정공(忠貞公 김전(金銓))만이 마땅히 복구하여야 된다고 말하였으나, 끝내 시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대간(臺諫)과 시종(侍從)들이 간하고, 태학생(太學生)들도 소()을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아 때가 지나도록 수합(守閤)을 하였으나 형세가 잠잠해지고야 말 것 같기에 그때 내가 김국경(金國卿) 등과 속삼강행실청(續三綱行實廳)에 있었으므로 동료들과 상의하여 말하기를, “대간들이 중도에 중지하면 뒤에 가서는 복구될 기회가 없게 될 것이요. 우리들이 출위(出位)하는 것으로 혐의를 삼을 수 없으니 소장(疏章)을 올려 대간의 형세가 누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 마침 태묘(太廟)의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니, 임금께서 놀라고 두려워하여 그날로 태묘에 참배하고 공경과 대간과 시종을 급히 불러, “들어와서 나의 잘못된 것을 말하라.” 하였다. 그때 소릉의 복구 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의론들이 모두 이에 동의하자 드디어 임금이 허락하는 명을 내려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그 일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처음 소릉이 폐해진 뒤에 바닷가로 옮겨서 장사지내고는 제사지내고 수호(守護)하는 일을 폐한 지가 여러 해가 되었으므로 단지 무덤의 봉분만 있었으므로 여전히 사람들이 의심하였던 것이다. 악전(幄殿)을 설치하고서 묘를 이장하려고 깊이 파들어 갔으나 옥갑(玉匣 ())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몰랐다. 이날 밤 감독관이 선잠을 자는데, 꿈에 휘장을 치고 안석에 기대어 왕후의 모습을 갖추고 그 옆에 두 명의 시비[??]가 모시고 있는데 감독관을 불러 위로하기를, “너희들이 수고한다.” 하므로, 감독관이 엎드려 놀라 땀이 흘렀다. 꿈이 깬 뒤에 이상히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에 두어 자 남짓 더 깊이 파니 홀연 손바닥 만한 칠조각이 삽날에 붙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관의 두꺼운 칠이 떨어져서 올라온 것이다. 그리하여 이장하는 일을 잘 마치게 되었다. 안산(安山) 사람이 말하기를, “소릉이 폐위되기 전날 밤에 울음소리가 마치 능 안에서 나오는 것 같이 들리는 것을 인근의 백성들이 이상하게 여겼는데, 다음날 역마가 갑자기 들이닥쳐 능이 드디어 옮겨졌다는 것이다. 또 민가에서 집을 지을 적에 폐해진 능에서 나온 석물(石物)을 가져다 쓴 사람은 반드시 병을 앓았으며, ()을 먹이거나 말을 놓아서 묘를 밟게 하면 맑았던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폭풍이 불게 되므로 사람마다 조심하고 신처럼 여겼다.” 하였다. 새로 이장할 능터를 현릉(顯陵 문종(文宗)의 능) 왼쪽에 정하였는데, 두 능 사이에 잣나무가 빽빽이 하늘을 가리고 있던 것이 능의 역사(役事)를 시작하던 날에 갑자기 두서너 그루가 이유없이 말라버려 그것을 베어버리니, 두 능이 서로 마주보는데 가리워지는 것이 없었다. 이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 기정(岐亭) 권숙달(權叔達)이 승정원(承政院)에 숙직하던 날 밤 꿈에, 해평(海平) 정미수(鄭眉壽)가 유영상(柳領相)과 서로 치며 싸우는 모습이 마치 큰 원한이 있는 것 같았으며, 영상이 대단히 곤욕을 당하는 것 같았다. 권기정이 놀라 남에게 이야기를 하였는데, 수일 만에 능을 복위하자는 의론이 나왔다. 그러자 유영상이 제일 먼저 난색을 표하였는데, 그 의론이 끝날 무렵 갑자기 병이 들어 조정에서 수레에 실려 나와 오래도록 앓다가 드디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병들었을 때 자제에게 근일 조정에서의 정사를 묻기에, 소릉 일로 힘써 다툰다고 대답하니, 유공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기를, “이 일은 끝내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의 고집이 이처럼 대단하였다. 불러 모아 대답하게 할 때 만일 유공이 있었더라면 임금의 뜻을 끝내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평(海平)은 곧 소릉의 외손이므로 사람들이, “신령이 있다면 어찌 이 일에 원한과 통분이 없겠는가.” 하였다. 귀신이 갚는 것이나 남몰래 보답하는 것이 무리가 아님을 기정의 꿈에서 증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진실로 황당한 것이므로 꼭 그러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우연히 일의 기회가 서로 감응된 바가 있는 것 같으니 이 역시 이상한 일이다.

영묘(英廟 세종대왕)께서 문화 정치에 뜻을 독실히 가져 인재를 육성한 미덕이 전대(前代)보다 훨씬 뛰어났다.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선비들을 모아 날로 번갈아가며 숙직하도록 하여 토론(討論)하는데 대비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대접하기를 융성하게 하니, 세상 사람들이 영주(瀛洲 신선 있는 곳)에 오른 것에 비유하였다. 문충(文忠) 신숙주(申叔舟)가 하루는 숙직 당번이었다. 2경쯤 되어서 임금께서 환관에게 명령하기를, “가서 숙직하는 선비가 무엇을 하는가 엿보고 오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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